‘IB허용’ 등 자본시장법 개정안 무산 후폭풍
“금융 부문의 개혁을 이뤄 내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미래 보장이 안 된다. 대형 투자은행(IB)은 대한민국 미래의 꿈이다. ‘되겠나’ 하는 생각도 있겠지만 두고 보라.”(2011년 7월 ‘자본시장법 개정안 세미나’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 취임하자마자 IB와 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코넥스·KONEX), 대체거래소(ATS) 등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을 야심차게 추진하며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연결지었던 김 위원장의 계획은 법 개정 무산으로 결국 공허한 메아리로 남게 됐다. 정부를 믿고 신규사업을 준비해 온 증권사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대체거래소 등 차기 정부로


하지만 IB 업무는 일부 대형 증권사에 혜택이 돌아가 ‘경제민주화’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대체거래소와 코넥스 등은 대선을 앞두고 시급한 민생법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각 차기 정부로 공이 넘어갔다. 장외거래 중앙청산소(CCP) 도입 등 일부가 살아남아 23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핵심’은 모두 빠졌다.
특히 총 3조원 이상을 증자한 삼성·우리투자·대우·한국투자·현대증권 등 5개 증권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늘린 자본금 굴릴 곳 마땅치 않아”
A증권사 관계자는 “금융위 등 정부가 판을 깔아 놓고 돈을 늘려야 자격이 된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증자에 참여한 것 아니냐.”면서 “자기자본 대비 실질 수익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당분간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여 주주들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0월 1조 1200억원을 증자한 KDB대우증권의 올해 1분기 ROE는 2.2%로 지난해(4.2%)의 반 토막 수준으로 급락했다.
B증권사 관계자도 “거래대금이 줄고 과당경쟁에 의한 수수료 인하 압박까지 가중되는 마당에 주주들이 ROE 저조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물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털어놨다.
IB업무 등에 대비해 자본금을 늘려 놓았는데 법 개정 불발로 신규사업이 막히자 증권사들은 이 돈을 굴릴 곳을 찾느라 바빠졌다. 단기 차입금을 장기로 전환하거나 부채를 갚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생각이지만 돈을 불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C증권사 관계자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투자 등 돈으로 돈을 불리는 비즈니스를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내년 법 개정 재시도”
한국거래소의 대항마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대체거래소 설립도 요원해졌다. 증권사들은 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투자자들은 거래비용이 덜 드는 거래소를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 또한 국회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금융위는 내년에 법 개정을 재시도하겠다며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교보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 야당 의원들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겠다는 게 김석동 위원장의 생각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한 주범이 바로 대형 금융자본”이라면서 “소수의 돈 많은 금융자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어 새 정부에서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이성원기자 lsw1469@seoul.co.kr
2012-11-21 2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