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잔금 어쩌나”…대출자들 ‘분통’

“아파트 잔금 어쩌나”…대출자들 ‘분통’

입력 2011-08-18 00:00
업데이트 2011-08-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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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김모(32)씨는 지난 16일 저녁 거래하던 은행으로부터 한 통의 휴대전화 문자를 받았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억제정책으로 제1금융권은 8월17~31일 대출이 중단되며, 기존 접수된 대출은 9월부터 시행 예정입니다. 현재 대출은 제2금융권에서만 가능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아파트 입주가 이달 28일로 코 앞인데, 아무 얘기도 없다가 갑자기 신청해놓은 대출이 취소됐다고 하면 잔금 지급은 어쩌라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집값의 40% 정도를 대출을 받아 해결할 계획이었다”는 그는 “은행 측에서는 미안하다는 얘기만 되풀이한다”며 “입주 날짜를 바꾸는 게 어려운 상황인데, 금리가 훨씬 높은 2금융권을 알아봐야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18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하면서 금융소비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당장 주택 마련 자금이나 운전자금이 필요한 개인, 중소기업인 등이 대출을 제대로 받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무조건 가계대출을 줄이라는 정부와 갑작스럽게 신규 대출을 중단한 은행들을 향해서도 거침없는 쓴소리를 던지고 있다. 결국 이자 부담이 높은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어 서민들의 부담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자영업자 우모(40)씨는 “대기업 외에 중소기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 경기가 안 좋은데다 수출 중소업체도 환율이 낮아져서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석을 앞두고 자금을 묶어버리면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은 상당히 궁지에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 연장을 가정하고 사업 계획을 잡았는데 대출 연장이 안 되면 자금 회전에 문제가 생기니 저축은행이나 사채로 가야 된다”며 “몇 개월 후 수십 %인 사채 이자를 견디지 못해 개인이나 중소 자영업자가 파산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막으면 주택 실수요자뿐 아니라 생활자금이나 자녀 교육비가 필요한 직장인이나 사업 자금이 필요한 중소 자영업자도 큰 피해를 볼 거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규취급액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주택 구입 이외의 용도로 사용한 가계의 비율은 지난 3월 기준 전체 대출자의 42%로 추정된다.

정부의 구두주의를 대출 중단 지시로 해석한 은행 관계자들은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은행이 대출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녀 결혼이나 등록금 용도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개인들은 대출금리가 10~15% 수준인 2금융권으로 발을 돌려야 한다”며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어 규제하더라도 대출 수요는 줄거나 없어지지 않고 2금융권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국이 지나치게 가계대출 규모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국이 금융부채가 949조원인 점에만 주목하고 개인의 금융자산이 2천200조원을 넘어선 것은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평균 47~48% 수준으로, 외국에 비해 대출규모가 과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늘고 있어 주의하라고 구두로 지침을 전달했을 뿐인데, 일부 은행들이 이를 잘못 받아들여 대출을 전면 중단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은행들도 이번 사태를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떼일 염려가 적은 주택담보대출처럼 손쉬운 ‘이자놀이’에 빠져 수익을 늘려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시중은행 7곳과 지방은행 6곳, 특수은행 5곳 등 18개 국내은행은 현대건설 주식매각차익을 빼고도 7조원이 넘는 사상 최고 수준의 순이익을 올렸는데, 가계와 중소기업을 상대로 고금리 장사를 한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한 당국자는 “낮은 금리로 돈을 끌어들이고 조금 마진을 붙여 연체율이 낮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을 늘리는 게 은행 입장에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당장 이익을 내는 데 급급해 가계대출의 위험성이 커지는 전체 상황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정부 대책에 반발해 국민을 볼모 삼아 ‘시위’를 하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네티즌들은 “은행이 대출을 전면 중단한다는 게 이해가 안간다”, “집값 하락의 신호탄이 될 것 같다”는 등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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