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의 자랑’ 훼손” 질타 배경

이건희 “’삼성의 자랑’ 훼손” 질타 배경

입력 2011-06-08 00:00
업데이트 2011-06-0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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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한 조직문화는 삼성의 핵심가치’ 지론

매주 화.목요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정기 출근하면서 경영현안을 직접 챙겨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의 조직문화에 칼을 빼들었다.

삼성이 계열사를 자체 감사하는 과정에서 삼성테크윈 임직원들의 부정이 발견된데 따른 것이다.

삼성테크윈 오창석 사장이 8일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김순택 미래전략실장으로부터 이 회장의 질타를 전해듣고 곧바로 사의를 표명한 것도 이 회장이 삼성의 핵심 가치이자 최고의 기업 가치로 여겨온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된 점에 대해 최고경영자(CEO)로서 지휘 책임을 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삼성테크윈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임직원 비리 사실을 보고받고 “(사회 통념으로는 별것 아니라고 할지라도) 삼성에서는 이런 일이 당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고, 아무리 작은 부정도 용납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자부심으로 여겼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CEO나 임직원의 부정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은 삼성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일을 잘하려고 하다가 저지른 실수는 너그럽게 용서하겠지만, 사욕을 위해 부정을 하거나 거짓 보고를 하거나 불성실한 자세로 업무에 임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는다”며 “이를 용인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기업이나 국가에 다 같이 누를 끼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사욕을 위한 부정이 계속되면 기업이 망하고 결국 국가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는 논리다.

이후로 삼성에서 부정은 금기로 통했고 임직원이 부정을 저지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엄중한 조처를 해왔다.

’신상필벌(信賞必罰)’과 ‘예외 없는 적용’의 인사 원칙을 고수해온 것이다.

이는 그룹 내에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와 함께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장도 선친의 뜻에 따라 “부정이 있는 회사에서 좋은 물건이 나올 리도 없지만, 설령 좋은 물건이 나온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반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 망한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회사에 돈이 되더라도 부정한 방법은 절대 안 된다는 것으로, 심지어 해외에서 고액의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해 온 인재도 삼성에서 근무하면서 부정을 저지르자 비용 문제 등 반대 의견에도 바로 회사를 그만두게 한 사례도 있다고 삼성 관계자는 전했다.

따라서 오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도 삼성 그룹에 부정이 만연해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부정이 있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벌백계(一罰百戒)’를 통해 그룹 임직원에게 부정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우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번 인사 조치 후 “삼성에서 ‘청결한 조직문화’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삼성 미래전략실과 계열사의 감사 기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감사 책임자의 직급을 높이고 인력도 늘리고 자질도 향상시켜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계열사에 대한 미래전략실의 ‘컨트롤 타워’ 역할에는 한층 힘이 실리게 됐고 이는 곧 이 회장의 조직장악력 공고화를 의미한다.

미래전략실의 전신인 회장 비서실 감사팀은 삼성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만큼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감사팀의 촘촘한 감시망은 비리와 부정을 터부시하는 삼성 특유의 조직문화를 만든 바탕이 된 동시에 회장-비서실-계열사로 이어지는 ‘삼각편대’ 경영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1990년대말부터 ‘삼성공화국론’과 ‘X파일 사건’,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잡음 등 악재가 잇따르고 이른바 ‘반(反) 삼성’ 세력의 집중공격을 받게된 옛 구조조정본부가 전략기획실로 약화된데 이어 사실상 해체되면서 삼성의 감사 기능도 단순한 ‘경영진단’ 수준으로 약체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경영복귀와 미래전략실의 설치로 ‘삼각편대’ 경영이 되살아나면서 감사기능의 강화는 이미 예견돼 왔고 그것이 삼성테크윈의 비리 적발로 조기에 가시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당장 전무급인 삼성 미래전략실의 경영진단팀장의 직급이 상향되고 미래전략실 및 계열사 감사 담당 인원도 대폭 보강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감사팀이 소신있고 단호하게 감사하는 데 내부적인 요인이 장애가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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