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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광주사고 감리자, 공사현장 한 번도 안 갔다

[단독] 광주사고 감리자, 공사현장 한 번도 안 갔다

손지민 기자
입력 2021-06-13 17:13
업데이트 2021-06-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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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처음 입 연 감리업체 대표 인터뷰
사고 당일 핵심 단서 ‘감리일지’ 작성 안해
“철거업체, 공사일정 공유 안 해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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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버스 탑승자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소방대원들이 건물 잔해에 눌려 완전히 찌그러진 버스를 중장비를 이용해 끌어내고 있다. 2021.6.9 연합뉴스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버스 탑승자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소방대원들이 건물 잔해에 눌려 완전히 찌그러진 버스를 중장비를 이용해 끌어내고 있다. 2021.6.9 연합뉴스
광주 붕괴사고가 일어난 철거현장의 감리를 맡았던 감리회사 대표 A씨가 사고 건물의 철거계획서가 통과된 후 사고가 날 때까지 보름간 한 번도 현장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건물 붕괴의 원인을 밝힐 핵심 단서로 지목된 ‘감리일지’를 사고 당일 작성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사고 직후 잠적했다고 알려진 A씨가 언론에 입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는 13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고 당일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서 “철거공사가 언제 시작되는지 알지 못했다. 사고 당일에도 공사가 진행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청이 철거(해체)계획을 허가해 준 지난달 25일부터 붕괴사고가 일어난 9일까지 철거업체로부터 공사 일정을 공유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장에 나갈 수 없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철거계획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현장을 관리·감독하고 안전점검까지 해야 하는 감리가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자체 보고할 감리일지 작성 안 한 듯
A씨는 사고 당일 감리일지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리일지는 감리업체가 공사 과정에서 감리업무를 진행하고 지적할 사항 등을 포함해 매일 기록하는 문서로 관할 지자체에 보고·제출해야 한다. 철거 공사가 규정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붕괴 원인을 밝혀줄 중요 단서이지만 A씨는 이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공사 일정을 몰랐다는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고 당일뿐만 아니라 공사 전반에 관한 감리일지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사고 다음날 감리사무소 등 5곳을 압수수색해 감리일지를 확보하려 했지만 사고 당일 감리일지를 포함해 공사 전반에 관한 감리일지 문건을 확보하지 못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A씨는 지난 11일 경찰 조사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에 챙겨나온 물품…“자료 은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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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붕괴참사 수사 경찰, 현대산업개발 현장사무소 압수수색
광주 붕괴참사 수사 경찰, 현대산업개발 현장사무소 압수수색 사상자 17명이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시행사인 현대산업개발의 현장사무소에서 압수품을 챙겨 나오고 있다. 전날 해당 재개발 구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매몰된 시내버스 안에 갇힌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2021.9.10 연합뉴스
이 때문에 A씨가 감리일지를 포함해 관련 자료를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A씨가 지난 10일 새벽 자신의 사무실에 들러 자료로 추정되는 물품을 챙겨 빠져나가는 장면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사고 이전 CCTV를 보면 내가 들고 다니는 보따리는 항상 똑같다”며 “빼돌린 것이 아니라 다른 일과 관계된 자료 등 평소에도 갖고 다니는 물품들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철거업체가 계획서를 어기고 마구잡이식 철거를 한 것도 사실이라고 A씨는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철거계획서대로 공사를 하지 않았다”면서 “철거 건물 뒷편에 3층 높이의 잔재물을 쌓고 기계가 그 위에 올라가 5층과 4층을 차례대로 철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5층과 4층을 우선적으로 걷어내야 하는데 전면 부분만 먼저 철거했다. 사고가 난 도로 반대쪽 부분의 건물을 토막내듯이 자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주 감리, 현장 의무관리 규정 없어”
A씨는 다단계 불법하도급 정황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스를 보고 재하청 정황을 알았다. 저는 현장에 계속 상주하지 않는 비상주 감리로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계획서대로 됐는지 감리할 뿐 내부 안전·품질·공정 등은 현장소장이 총괄한다”고 책임을 돌렸다. 이어 “비상주 감리가 몇 회 감리를 나가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감리가 현장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철거하는 사람들이 감리를 무시하고, 제대로 된 상의는커녕 한 번도 부른적이 없다는 것이다. A씨는 “공사를 시작할 때마다 공문을 보내 달라고 수 차례 말했음에도 내게 보낸 적이 없다”면서 “현장에서는 감리자를 무시한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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