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유독 대한민국만은 예외다. 세계 10대 경제 규모에다 명실상부한 정보기술(IT) 대국이지만, 여전히 ‘장시간 근로 전략’에 매달려 왔다. 덕분에 세계 최장 근로시간 국가라는 오명은 늘 대한민국을 따라다닌다. 그만큼 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던 셈이다. ‘과로사 천국’에서 만든 제품을 명품으로 여길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월화수목금금금’ 전략은 이제 버려야 한다.
다행히 지난 2월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우선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명확히 했다. 종래 해석상 관행은 최대 68시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단축 폭이 엄청나다. 관공서 공휴일도 유급휴일로 의무화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근로시간 특례 업종도 26개에서 5개로 대폭 줄였다. 과거 노사정위원회의 권고를 훨씬 뛰어넘은 결과다. 한편 휴일근로에 대한 할증률은 50%로 명확히 했다. 중복할증에 관한 해석상 논란의 여지를 아예 없앴다. 한참 늦은 감은 있지만 그만큼 더 반갑고 후련하다.
다만 5%의 아쉬움도 있다. 사실 그동안 장시간 근로의 부작용과 비효율성을 뻔히 알면서도 단축에 주저했던 것은 근로시간 단축이 ‘양날의 칼’ 같아서였다. 노사 양측에 모두 반갑지만은 않다. 사용자는 인력 추가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짧아진 근로시간만큼 줄어드는 임금은 근로자의 몫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지만, 그들에게는 당장에 닥칠 부담이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온다.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결국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성패는 당사자인 노사를 잘 설득해 내는 데 달려 있다. 마뜩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고개는 끄떡이게 만들어야 한다. 법규정이 ‘세밀하면서도’, ‘현장 친화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자로 잰 듯 획일적 규제 방식은 곤란하다. 자칫하면 시장은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가히 최악의 시나리오다.
우선 근로자들에게 닥칠 임금 감소 문제를 과소평가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양보하라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그런 양보론은 대기업 고임금 근로자들에게만 통할 수 있을 뿐 저임금 근로자들에게는 어림도 없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투 잡을 뛰어야 할 판이라면 화가 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은 필수적으로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특단의 사회안전망 강화와 연계됐어야 했다.
인력을 추가 채용하면 문제 될 게 전혀 없다는 식으로 사측을 몰아세워서도 안 된다. 비용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예컨대 태풍 등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작업장 긴급 복구를 위해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성 연구 업무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구인난에 시달리는 영세 사업장이다. 일한 지 50년 넘은 고령자들이 아직도 현역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사람을 더 뽑으라는 말은 통할 리 없다. 한계 사업장으로 치부하고 당장 퇴출시키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변화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2004년 주 5일제를 도입할 때도 수많은 우려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지금은 어떤가. 주말의 여유를 찾게 됐다. 대한민국은 정보기술 강국으로 거듭났다. 이번 근로시간 단축도 꼭 그리 됐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여러 산업 분야의 다양한 현장 목소리를 더욱 귀담아 듣고, 세부 정책을 더욱 촘촘하게 다듬어 가야 하는 이유다.
2018-04-20 31면